공간을 비우고, 삶을 채우다.

0

상담 신청하기

VOL. 01 · 여는 글

여는 글 — 공간을 대하는 태도

제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는 완공하는 날에 있습니다. 텅 비어 있던 집에 처음으로 볕이 들고, 고객이 조심스레

“집은, 우리가 가장 오래 머무는 문장입니다.”

제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는 완공하는 날에 있습니다. 텅 비어 있던 집에 처음으로 볕이 들고, 고객이 조심스레 문을 열어 “여기서 살고 싶었어요” 하고 웃는 그 순간. 저는 그 표정을 보려고 도면을 그리고, 자재를 고르고, 늦은 밤 현장을 다시 돌아봅니다. 공간은 결국 사람의 하루를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, 저는 매 현장에서 다시 배웁니다.

무아(無我)는 나를 비운다는 뜻입니다. 저는 공간을 설계할 때 제 취향을 앞세우지 않으려 애씁니다. 그 대신 그 집에 살아갈 분의 하루를 조용히 그려 봅니다. 아침에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, 어느 창가에서 오래 머무는지, 무엇을 볼 때 마음이 놓이는지. 그 답을 따라 빛과 재료와 여백을 조율하고 나면, 공간은 비로소 사는 사람을 닮아갑니다.

솔직히 고백하면, 저는 화려한 집보다 오래 편안한 집을 만들고 싶습니다. 첫날의 감탄은 쉽게 식지만, 매일의 평온함은 십 년이 지나도 곁에 남으니까요. 그래서 저는 하나를 더 넣고 싶은 유혹 앞에서 자주 손을 멈춥니다.

“이걸 더하면 이 가족의 삶이 정말 나아질까?” 그 질문에 정직할 때에만, 저는 다음 선을 긋습니다.

2026년의 인테리어는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. 차갑게 반짝이던 미니멀리즘이 물러나고, 따뜻한 뉴트럴과 손끝의 촉감, 오래 곁에 둘 물성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. 신기하게도 이 흐름은 제가 늘 믿어온 것과 꼭 닮았습니다. 화려함으로 눈을 붙잡기보다, 담백함으로 마음을 붙잡는 일 말입니다.

그래서 저는 트렌드를 부지런히 공부하되, 트렌드에 휘둘리지는 않으려 합니다. 세계와 한국이 어디로 향하는지 읽되, 끝내는 “이 집에 사는 분에게 십 년 뒤에도 편안할까”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.

이 매거진에 담은 해외와 국내의 흐름도, 결국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재료일 뿐입니다.

이 작은 매거진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. 무아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, 제가 제안하는 몇 가지 결, 그리고 2026년의 세계와 한국이 향하는 흐름까지. 부디 유행을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, 오래 편안할 것만 골라내기 위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. 제가 끝까지 남기고 싶은 것은 멋진 스타일이 아니라, 당신의 매일이 조금 더 다정해지는 일이니까요.

무아인테리어 대표 · 배성미 드림